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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

태조 이성계(1335~1408)

조선을 세운 임금 태조 (재위기간 1392~1398)

고려말 우군도통사였으며 요동정벌을 위해 북진 중
'이게 최선입니까' 고개를 갸우뚱하고
4불가론을 내세우며

그 유명한 ‘위화도회군’을 감행하여 우왕을 폐하고 강화도로 쫒아냈다.



정치적,군사적 권력을 모두 잡은 후 전제개혁을 단행하였고 신진세력의 경제적 토대를 구축하여 조선을 세우고 도읍을 한양으로 옮겨 새 국가의 기틀을 다졌다. 





토막지식

- 4불가론-
1.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2. 농사철에 군사를 동원하면 안된다.
3. 전 병력을 동원하면 왜구의 침입이 걱정된다.
4. 여름 장마철이라 무기가 녹슬기 쉽고 전염병이 나돌까 염려된다


출생
1335년함경도 영흥에서 이자춘의 차남 태어났으며 총명하고 용맹하였다.  

성장
1357년 (공민왕5)유인우가 원나라의 쌍성 총관부를 공격할 때 전진에서 아군과 공조하여 공을 세우고 후에 아버지의 벼슬을 이어받아 금오위상장군·동북면상만호가 되었다. 

1361년 독로강만호 박의의 반란을 진압하고, 같은해 홍건적의 침입으로 개경이 함락되자 그이듬해 사병 2천명을 거느리고 수도탈환전에 큰공을 세우고 제일 먼저 개경에 입성한다, 그 공으로 동북면 병마사가 되었고 원나라의 나하추가 침입하자 함흥평야에서 크게 무찌른다.

이후 모든 전투에서 전승을 기록하며 무장으로써의 타고난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게 된다. 

1377년(우왕3)에 수도 개경을 위협하는 왜구를 크게 물리치고, 1380년에는 양광(충청), 전라, 경상도 에서 왜의 아기바투가 지휘하던 왜구를 물리쳐 찬성사 겸 동북면 도지휘사로 승진한다.

연이은 전승과 더불어 초고속 승진으로 1388년(우왕 14) 수문하시중에 오른다. 

정권장악

1388년(우왕14) 명나라의 철령위 설치 문제로 요동정벌을 반대했으나, 결국 요동정벌 이 결정되자 우군 도통사가 되어 좌군 도통사 조민수와 함께 북진 하다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개경으로 돌아와 최영을 제거하고 우왕을 페한 뒤 창왕을 세우고 자신은 정치와 군사력을 장악한 실력자가 되었다.

개국

1389년 창왕을 폐위하고 정도전 등과 함께 공양왕을 세우고 결국 1392년 (공양왕4) 정몽주를 제거하고 정도전 조준 남은 등의 추대로 공양왕에게 양위를 시킨 후 원주로 내쫓고 스스로 새 왕조의 태조가 되었다.1393년 국호를 조선이라 정하고 1394년(태조3)에는 수도를 한양으로 옮겼다.

선위 및 죽음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방과(정종)에게 선위한 뒤 상왕(上王)이 되고, 2차왕자의 난으로 1400년 방원(태종)이 즉위하자 태상왕이 되었다. 왕자들의 권력 다툼의 괴로움으로 고향 동북면에 머물다 그 뒤 불가에 귀의하였다가 1408년 5월24일 창덕궁 별전에서 세상을 떠났다.


선위(禪位)와 양위(讓位)
사전엔 동의어로 나오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는 단어
같은 점 : 임금자리를 다음사람에게 줌
다른점 : 선위 - 임금자리에 넘겨준다.
            양위 - 임금자리를 넘겨받다.